잡초와 빗자루
엊그젠가 회사에서 교재교육을 하던 중 한 선생님으로부터 대표님 머리카락이 잡초 같아요란 말을 들었다.
좋은 의미는 아닌 기분이 들어서 “저는 농담이나 장난을 딱히 즐기진 않습니다”라고 딱 잘라 얘기했다. (좀 더 부드럽고 유머러스하게 넘어갈 수 있었는데 그땐 왜 그렇게 응대 했는진 잘 모르겠지만서도...)
아무튼 또 어젠가 그제는 어머니께로부터 다시 머리를 길러보면 어떻겠냐는 말씀을 들었다.
장발로요? 라고 나는 되물었고 어머니는 그렇다고 하셨다.
흠... 약 2~3년 동안 투블럭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는데 지금 머리스타일이 나한테 잘 안 어울리나??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차피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데 내가 무슨 헤어스타일을 하던 평균 이하일 것은 확실할 테고 머리숱이 남들의 두 배는 되는데다 반 곱슬머리라서 조금만 길어도 머리에 땀 차고 부스스한 스타일이라 지금의 짧은 머리가 이젠 익숙한 터였다.
그러다 문득 예전 장발 머리가 어땠었더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 휴학 중이던 2003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7년전... 맞나?? 아무튼 스물여섯 때. 군대 동기였던 타 대학 연극영화과 연출 전공의 형의 꼬임에 넘어가 단편 영화의 조연을 맡았더랬다. (누군가 검색해 볼까봐 제목은 적지 않겠다.)
그 당시 나는 노랑 탈색머리 장발이었는데 형이 시나리오를 쓴 오토바이 가게 수리공의 이미지와 딱 맞아 떨어졌고 그렇게 나는 배우로서의 아무런 준비도 없이 촬영을 했다.
재미있었던 것은 내가 애니메이션 연출을 하다가 배우를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만화를 그리는 혹은 애니메이션 원화를 그리는 사람들은 알 테지만 캐릭터 감정 연기를 연출할 때나 표정을 그릴 때 그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이입이 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애니메이션 연출을 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캐릭터도 그릴 줄 아는 사람이니 당연히 연기도 어느 정도 하겠으려니 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그 단편 영화는 국내에서 여러 큰 상들을 받으며 나름 성공한 작품이었지만 난 내 연기가 형편없었음에 참담함을 느꼈다는 의미다.
내 손으로 그리는 것과 실제 연기를 펼치는 캐릭터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었고 그 땐 그 걸 몰랐다. 그리고 나는 그 이후로 절대로 연기 쪽은 쳐다보지 않았다.
문득 그때의 자료를 찾아보니 그땐 좀 샤프했구나란 생각이 드는 한편 머리 뒤에 머리가 하나 더 달려있다고 놀려대던 대학 동기들과 후배들의 말이 사실이었구나 하는 깨달음도 든다.
음... 스타일 변신이 기분전환이나 분위기 전환에도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겠으나... 그래도 다시 장발로 돌아가긴 힘들 것 같다.
#머리카락 #헤어스타일 #짧으면잡초길면빗자루 #장발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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