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난 검정이다.
한 번 더 흰색을 칠한 뒤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한참을 스케치를 했는데 마음에 안 들어 결국 검정색으로 덮어버렸다.
멍하니 캔버스를 바라보고 있자니 처음엔 어떻게 그리려고 했었지? 무얼 표현하려고 했었지? 하고 곰곰히 생각을 해봤는데 그냥 무작정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래 다 계획을 세운 뒤에 작업을 하는데 이번엔 그냥 아무생각없이 작업을 시작했던 것이다.
왜 하필 검정일까? 마음이 동했을 때 무리해서라도 쭉 작업했으면 뭔가 달라졌을까? 지금 난 이걸 왜 하고 있는 걸까 등등..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제의 난 형태 그대로였고 오늘의 난 색 그 자체였다.
이유도, 목적도, 의미도 아무 상관없다. 결국은 검정이지만 아무생각없이 없이 뭔가를 할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다.
오늘 난 검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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