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증
오전부터 성남쪽에서 일이 있어서 처리하고 다시 길동으로 넘어오니 1시가 넘었었다.
사무실에서 처리할 일이 있어서 사무실에 들르기 전에 점심을 먹고 갈까 그냥 갈까 하다가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아서 그냥 사무실로 가서 일 처리를 마치고 나선 시각이 오후 2시 50분 정도..
자택 근무인지라 사무실 볼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출출해져서 점심겸 저녁으로 동네 멸치국수 집엘 가서 멸치국수랑 김밥 한 줄을 먹었다.
늦은 점심과 이른 저녁 시간이었는데 내가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설 때 쯤 가게 안 에는 40대 중반의 아저씨 한 명과 4인 가족이 남아 있었다.
아무튼 식사를 마치고 집 아파트 정문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는데 누군가 뛰어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하얀 와이셔츠에 양복바지 차림을 한 말끔하고 큰 키의 청년이었다. 손에는 목걸이 줄 같은 걸 들고 있었는데 난 순간 속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평소에 사람 얼굴을 잘 안쳐다보기도 하고 잘 몰라보기도 했기 때문에 혹시라도 나를 아는 사람인데 내가 몰라볼까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건 그냥 나의 지레짐작이었을 뿐이었다.
그 청년은 목걸이형 신분증을 나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청년 :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 아무개인데 신분증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나 : 무슨 일이시죠?
청년 : 방금 식사하신 곳에서 검거자 제보가 들어왔는데 닮으신 것 같아서요.
나 : 신분증 좀 다시 보여 주세요.
청년 : 네, 여깄습니다.
난 벌써부터 속으로 이 사기꾼 놈이 누구한테 감히 사기를 치려고!!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내가 신분증을 본다한들 이게 진짠지 아닌지 알게 뭔가!
아무튼 신분증 앞면은 그 청년의 사진이 그대로 있었고 뒷면엔 칩 같은 게 보여서 암튼 긴가민가했다.
범죄자를 이렇게 직접 나와서 잡나 싶어 난 피식 웃으면서 내 신분증을 보여줬다.
그런데 내 신분증을 정말 대충 (1초도 안 본 것 같다.) 보더니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좀 아닌 것 같긴 했는데 혹시나 해서요. 헤헤”
나도 씨익 웃었고 우리의 짧은 만남은 그렇게 서로의 어색한 미소와 함께 끝이 났다.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렇다면 범인은 바로 내 옆에서 국수를 먹던 그 아저씨? 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려던 순간 또 해야 할 일들이 생겨서 잠시 생각을 접고 일을 했다.
잠시 후 다시 담배 한 대 필 시간이 생겨서 아까 그 일을 떠올리게 됬다.
그 친구는 참 이십 대 후반이나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던데 참 빨리 출세했나보네.. 이제와 떠올려 보니 외모도 참 잘 생긴 친구인 것 같고.. 그러다가 다시 신분증을 서로 주고받던 장면이 생각났다.
그 친구는 왜 내 신분증을 대충 봤을까? 신분증을 특별한 거부감 없이 보여주는 제스처만으로도 오해가 풀리는 건가? 등등..
문득 내 신분증을 자세히 쳐다봤다.
2003년 천안시장 발급으로 되어 있다. 2003년이면 졸업 작품을 하고 있을 때인 것 같다.
그리고 인물 사진...
음...
갑자기!!
때론.
신분증이 그 사람을 증명 한다기보다는
현재의 모습과 행동이 그 사람을 증명하는 것을 아닐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난 지금 천안에 살고 있지 않으며
내 신분증의 사진은 무려 16년 전인 스물일곱의 내가 존재할 뿐이다.
그냥 갑자기 재밌는 경험과 생각이 떠올려서 몇 자 적어 봤다.
#근데정말스물일곱살맞냐? #신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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