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멍
요즘 난 어머니께서 발가락 뼈 골절을 당하신 뒤로 식사를 챙겨 드리거나 집안 살림 같은 것들을 하고 있다.
오늘 오후가 병원에 세 번째 검진을 가는 날이었는데 비가 올락말락 하다가 결국 출발할 즈음엔 내리기 시작했다.
병원까지의 거리가 약 700 미터 정도밖에 안 되서 늘 휠체어에 모시고 갔었는데 오늘은 비 때문에 자차로 이동하기로 했었는데 아뿔싸! 시동이 안 걸렸다.
평소 우리집 차는 어머니께서 화실에 가실 때 사용해왔고 최근 한 달 여동안 주차장에 파킹된 상태로 운전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직감적으로 배터리 방전이 의심되었다.
병원 예약시간이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급한대로 카카오 택시를 호출해서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병원까지의 거리가 워낙 가까워서 배차가 과연 될까 싶었는데 바로 택시가 잡혀서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늘 하던대로 엑스레이를 찍고 의사의 진료 결과를 들었는데 다행히도 이제 반깁스를 풀고 목발로 걷는 연습을 좀 하시라는 소견을 들었고 다음 내원 예약을 한 뒤 다시 카카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선 보험사에 전화해서 자동차 수리기사님을 호출했고 약 15분 정도 기다리니 바로 오셨다.
점검 결과 배터리가 2018년도 제품인데 수명이 다했다고 하셔서 2021년도에 생산한 새 제품으로 교체를 했다.
오후 3시쯤 다시 회사로 출근해서 일했고 6시반쯤 퇴근해서 저녁을 차리려고 했는데 어무이가 다 준비해 놓으셔서 그냥 먹고 설거지만 했다.
난 매번 움직이지 마시라고 잔소리를 하는데 어머니께선 누워만 있기가 불편하셨는지 최근엔 밥이나 국 같은 것들을 자꾸 해놓으신다.
저녁 식사를 하고 대충 정리를 마친 뒤 정오쯤 대학동기가 보내준 대학시절의 교수님의 아버지 부고 문자를 뒤적였다.
장례식장이 내가 사는 곳의 바로 옆동네인 국립경찰병원 장례식장이었기에 오늘 입었던 출근 복장에 검정색 정장 상의만 걸치고서 저녁 8시 즈음 차를 몰고 나섰다.
장례식장에선 정말 오랜만에 무릎을 꿇고서 하나님께 고인과 가족분들이 안녕하시길 기도했고 교수님께 짧게 인사를 드린 뒤 다시 집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은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고 신호대기 상태에서 잠시동안 차창 밖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문득 가끔씩은 이렇게 혼자 드라이브를 나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세탁기를 돌리고 침대에 누워 콜라를 홀짝이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적고보니 인생에 멍때리는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절감한다.
멍, 정신없이 지나가버리는 시간속에서 오롯이, 온전히 나를 느끼는 고마운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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